고전소설 덕후극_미들마치_15_51-54장 얼그레이 가향차로 더 유명한 찰스 그레이 백작은 1830년 영국 총리직에 오른다. 1832년, 그는 선거구를 조정하고 중산층, 상인에게까지 선거권을 확대시키는 첫 선거개혁법을 단행한다.(The Reform Act 1832) 소설에도 일명 ‘10파운드 세대주안’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연 임대료가 10파운드 이상인 세대주나 그에 준하는 주택을 소유한 자에게 선거권을 확대한다는 내용이다.(846쪽) 치사한 ‘개혁’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이나 노동자 계급에게 선거권이란 아직 먼 이야기다. (선거권에 대한 추가 배경설명은 10화의 내용을 참조하길 바람. 1903년에 여성 참정권에 인생을 바친 우리의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등장하고, 1928년에야 보통선거가 이뤄짐) 이러한 와중에, 후보자 추천일을 앞두고 브.. 2024. 3. 11. 고전소설 덕후극_미들마치_14_49-50장 대답하러 왔다니까요, 자 어서 일어나세요, 여보! 도도는 머리맡에 있는 사람을 붙잡고 애원했다. 남편에게 말씀 좀 전해주세요, 제가 다 설명하겠어요… 그러나, 커소번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았다, 영원히. 도로시아의 제부 제임스 체텀 경은 그 누구보다도 흥분한 상태다. “처형은 이미 주위 사람의 부주의로 희생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만큼은 제가 처형을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겁니다.”(824쪽) 남편은 석조 테이블에 엎드린 채 죽었다. 남편이 사라진 자리에 나타난 친족 성인 남성 제임스 체텀 경. 패밀리로서 처형의 명예를 위해 애쓰겠다는 그의 마음은 알겠다. 그런데 이 남자 때문에 도로시아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겠다는 불안이 격하게 몰려온다. 물론 선의로 시작하는 마음을 .. 2024. 3. 5. 고전소설 덕후극_미들마치_12_42-47장 한편, 지금 커소번을 괴롭히는 건 그의 아내였다. 아니 새파란 조카 윌 레이디슬로였다. 『신화학전해』에 대한 의지는 사그라들었다. 어이없게도 이미 독일에선 연구와 해석이 끝난 주제였다. 성경 속 신비와 고대 신화를 버무려 신묘한 뭔가를 골방에서 혼자 연구하던 커소번은 현타를 맞은 것이다. (그건 정말 나도 유감이다) 하지만 연구자로서의 진가는 그 다음부터가 아닌가? 낡고 한물간 주제라 해도, 남들이 해석과 정리를 끝냈다 해도, 연구자의 고독과 열망이 지적으로 진솔하게 구축되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스스로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마무리를 수행하는 게 연구자의 저력 아니겠는가. 그러한 결과물의 가치를 어느 석학의 것과 비교하겠는가. 커소번의 멘붕을.. 2024. 2. 27. 고전소설 덕후극_미들마치_11_39-41장 도로시아는 제부 체텀 경의 제안으로 큰아버지를 만난다. 농지 경영에 선한 비전과 계획을 품고 있는 도도만이 브룩 씨를 움직일 수 있다고 체텀 경은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미 01회에서 말했지만,도로시아는 농가 설계도까지 그려가며 쾌적한 농가를 꿈꾸던 사람이다) 마침, 그 시간 큰아버지 댁엔 윌 레이디슬로도 와 있다. “남편을 책 속에 내버려 두고 왔단 말이지. 그러는 게 좋아. 넌 여자니까 너무 유식해져도 곤란해.” 브룩 씨는 말 한마디를 해도 차별대마왕답게 한다. 굴하지 않고 도로시아는 큰아버지를 향해 단호하게 말한다. “킷다운스 말인데요, 아이들이 일곱이나 되는데 거실 하나와 이 테이블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 침실 하나뿐인 집에서 살고 있어요. 큰아버지는 국민의 향상을 도모하는 의원으로서 국회에 .. 2024. 2. 26. 고전소설 덕후극_미들마치_10_37-38장 이즈음 해서, 소설 속 영국의 사회상을 간략히 살펴본 후 스토리로 돌아가도록 하자. 가톨릭교도들은 공직에도 나갈 수 없었던 법안이 폐지(1828)되고, 조지4세는 치세 말 가톨릭 신자 해방안을 통과시킨 다음해 사망했다.(1830) 그를 이어 동생 윌리엄 4세가 영국의 왕이 되었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공업도시가 생겨나고, 농촌 인구는 도시로 날마다 이동 중이었다. 당연히 농촌에서는 주민 상당수가 사라진 선거구가 여기저기서 속출하는 상황. 그런데 주민이 줄어든 지역구라도 국회의원은 전과 똑같은 수로 선출되니 공업도시의 시민들은 저항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경제적으로나 인구수로나 꾸준히 세를 불려온 그들은 늘어난 인구수에 맞춰 대표를 선출하지 못하는 상황에 제동을 걸었다. 선거법을 개정합시다, .. 2024. 2. 20. 고전소설 덕후극_미들마치_09_34-36장 페더스톤 노인은 그렇게 갔다, 옆에 있는 사람을 마지막까지 괴롭히면서. 장례식 조문객들 중 슬퍼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구경하던 한 부인이 행렬 가운데 지나가는 누군가를 가리키며 텐션 높게도 소리친다. “저기 낯선 사람이 있군요! 작고 동그란 얼굴에 눈이 툭 튀어나와서, 개구리 같네…”(555쪽) (장례식에 나타난 낯선 사람이라... 더군다나 고인은 부자가 아니었던가) 도도의 동생 실리아도 호기심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놀란 음성으로 소리쳤다. “세상에, 도도 언니, 레이디슬로 씨가 다시 왔는데도 언니는 아무 말도 안 했잖아.” 얼굴이 새빨개진 도도, 얼굴이 굳어버린 커소번. 그때 큰아버지 브룩 씨가 껴든다. “그래, 나랑 같이 왔다. (…커소번을.. 2024. 2. 19. 고전소설 덕후극_미들마치_07_28-30장 눈 내리는 1월의 어느 날, 부부는 반년에 가까운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새신부 도로시아는 자신의 내실에서도 묘한 위축감을 느낀다. 창밖의 풍경 또한 눈으로 덮인 창백한 언덕뿐. 부부가 되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저 언덕을 함께 산책하리라 소망했던 도로시아는 차마 창밖을 내다보기조차 힘들다. 그런데 그 방에서 도로시아를 위로하는 초상화 속의 한 여인. 여자의 얼굴은 매우 섬세하다. 하지만 표정은 고집스럽다. 그리고 어딘가 친밀하다. “그것은 그녀의 소리를 들어줄 귀가 있고, 또 그것을 응시하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줄 것만 같았다. (…) 화면의 색이 짙어지고 입술과 턱이 커지면서 머리털과 눈은 빛을 떨칠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남자 얼굴로 바뀌어 뚫어지도록 그녀를 응시하.. 2024. 2. 13. 고전소설 덕후극_미들마치_06_23-27장 소설의 배경은 로마를 떠나 다시 미들마치로 돌아왔다. ‘내게는 이모부한테서 받을 것이 있다. 운이 트이는 것이다’ 낙천남 프레드 빈시의 착각타령 또 시작이요~~ 대책 없는 이 친구는 160파운드의 빚더미 속에서 골몰하고 있다. 그런데 철딱서니가 빚쟁이에게 써준 160파운드의 어음에 누구의 서명을 받았느냐 하면,지가 그렇게 좋다고 추앙하는 메리 아빠의 서명을 받았다는 사실.노브레인이 확실하다. 메리의 아버지 케일러브 가스 씨야말로 속이 좋아도 너무 좋은 인물. 성실하기만 하고 싫은 소리도 못해 곧이곧대로 상대방을 믿어주는 사람이다. 가세가 기울어 이팔청춘 큰딸을 고약한 페더스톤의 간병인으로 보내놓고도 이렇게 남의 빚보증을 서다니. (그때나 지금이나 돌봄 노동으로 내몰리는 건.. 2024. 2. 6. 이전 1 2 3 다음